‘무념무상’ 바위 부처가 되다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1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

2018-06-12 00:00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1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
고려시대 건립 보물 217호, 한국불교미술역사 첫 발상, 자연과의 조화·균제미 일품

▲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서있는 최종태 교수.
고려 11~12세기. 높이 1000㎝. 보물 217호. 충남 부여군 임천면.

백제가 서울을 웅진(公州)으로 하고 있을 때 즉 성왕(聖王)시대에 부여 대조사를 지었다. 이 미륵보살조각은 그 뒤 500년이 지나서 고려나라가 되고서야 조성된 것이다. 절과 조각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시간차를 두고 있었다. 무슨 인연이기에 그토록 만나기가 어려웠을까.

절 뒤편으로는 원래부터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어떤 시간에 한 스님이 있어 그 바위를 깎아서 미륵부처님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암산(岩山)에다가 마애불을 만드는 일은 많이 있었지만 바위를 부처로 바꿀 생각을 한 것은 한국불교미술의 역사에서 처음이며 참으로 멋있는 발상이었다.

부처님을 만나러 올라갈라치면 뒷모습을 먼저 보게되었다. 등을 타고 내려오는 장대한 바윗돌이 우리를 압도한다. 깎았으되 또 다른 새로운 바위를 만든 것이다. 내가 그리스로 이집트로 멕시코로 다니면서 수많은 돌 조각을 보았지만 손으로 만들어서 바위처럼 조성한 형상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앞면에다가는 선각(線刻)으로 긴 가사자락을 만들었는데 돌을 되도록 덜 다치게라도 하려는 듯이 옷의 두께를 가볍게 하였다. 얼굴은 입방체를 극단으로 살려 마치 현대조각가가 다루듯이 면성(面性)을 극대화하고 그 위쪽으로 고려불(高麗佛)특유의 직각형(直角形)의 갓을 만들어 우람한 조형예술로 완성하였다. 그 전체의 균제미와 자연과 어우러진 수려한 자태를 보라. 그 얼굴을 보라. 어찌보면 이웃집아저씨 같고 어찌보면 만고풍상을 다 이겨낸 깊고깊은 인자로운 표정을 하고있다.

한 스님이 있어 어떤 날 바위 안에 갇혀있는 미륵의 형상을 보았다. 석수(石手)를 시켜서 바깥 돌들을 깎아서 제거하고 보살의 형상을 들어나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대조사석조미륵보살이 탄생한 것이고 지금 천년의 세월을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얼마나 장한 일인가. 이렇게 해서 세계 초유의 바위미술이 만들어졌고 한국미술의 역사를 빛내고 있다. 그 미륵보살 코앞에 안내판이 있고 거기에 참으로 민망한 글씨가 적혀있었다. 부끄러워 차마 여기 옮겨 적어 기록할 수가 없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