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最古) 미륵사지석탑 돌아오다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5 미륵사지석탑]

2018-07-10 00:00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최종태 교수의 백제의 미를 찾아서 - 15 미륵사지석탑]
7세기 백제 무왕 때 조성, 최근 문화재청 복원 성공, 미륵사 창건 염원 이뤄져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인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에 걸친 수리 작업을 마무리 지은 모습. 연합뉴스
백제. 7세기. 높이 14.24m. 익산군 금마면. 국보 11호.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200년간 절에 목탑만을 세우다가 백제 무왕 때에 와서 미륵사를 창건하고 맨 처음의 이 석탑을 조성하였다. 목조의 형식을 응용해서 돌로 바꾼 대역사인데 완전히 새로운 기법이었다. 인근의 산에서 바위(浮石)를 떼어다가 융통성 있게 잘라서 썼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는 삼국 중에서도 그 문화가 가장 융성한 나라였다. 서쪽으로는 바다건너 당나라와 가깝고 내륙으로는 김제·옥구에 큰 평야가 있었다. 그 중심 금마(金馬) 땅에다 대 가람을 짓고 불교역사상 없는 세 탑을 세웠으니 동탑(東塔)과 서탑(西塔)은 돌로 하고 그 가운데에는 더 큰 목탑(木塔)을 세운 것이었다. 지금 반쯤 허물어진 채로 서 있는 돌탑은 그 중 서쪽 탑이다. 미륵사에는 9층탑들이 세 개가 서 있었을 것인데 당시 현장을 상상해보건데 정말 장관이였을 것이다. 목탑은 또 어찌나 대단하였던지 나중에 신라 선덕여왕이 그 기술을 전수 받아 황룡사에 9층목탑을 만들었다하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이 와서 허물어지고 있는 서탑을 시멘콘크리트로 보완장치를 했었는데 최근 들어 우리 문화재청이 새롭게 해체 보수 복원해서 그 공사가 막 끝났다. 시멘트로 해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일부는 새 석재를 투입해서 원형을 살렸다. 기단부터 2층까지는 원형대로 회복시켰다고 한다. 이번 해체과정에서 귀중한 미륵사 건립발원문이 나왔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왕후(佐平 沙定積德의 딸)가 재물을 시주하여 639년 가람을 창건하고 탑을 조성하였다.

“원 하옵건데 위로는 정법(正法)을 크게 하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는데 도와주시고 세세에 모든 중생들이 영원토록 다 함께 복리를 받고 다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실로 천오백 년 만에 무왕의 미륵사창건 그 염원의 기록이 햇빛을 본 것이다. 그 간절한 뜻이 미륵사 대가람을 낳았다. 그런데 창건 후 불과 삼십년도 못 되어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당(羅唐)연합군의 일격에 풍지박산이 된 것이다. 그 한은 얼마나 깊었겠는가. 절인들 온전했겠는가. 언젠가 이 세 탑만이라도 그 옛날 모습대로 다시 살아올 날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그간의 애절한 사정이 안타까워서하는 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예술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