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그를 임명하면 더 이상 협치는 없다거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말하며 압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강행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선언으로 여야 협치 구도에 암울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은 여러 포석을 깔고 있다. 인수위를 거치지 않고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된 사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정치 환경도 한 몫을 했다. 야당 정치 공세에 밀릴 경우 임기 초반부터 안정적 국정 수행을 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17개 부처 가운데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명만 임명됐다. 새 정부 출범 40일이 가깝도록 내각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이 곧 열리는데다 G20 회의 등 주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도 기다리고 있다. 외교장관 없이 이를 치르기엔 벅차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정해진 기간에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판단'을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 대통령은 “저는 국민 뜻에 따르겠다. 야당도 국민 판단을 존중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야 3당이 '사실상 선전포고'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정현안을 더 어렵게 하는 원인 제공이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밀어붙이기가 현실화된다면 국회 차원의 협치가 사실상 끝난 것은 물론이고, 우리 야당으로서도 보다 강경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집권 초반부터 정국이 꼬이는 것은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야도 똑같이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원초적인 잘못은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충족시키는 인사가 없다는 점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여권은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비치고 야당은 흠집내기 발목잡기에 골몰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그토록 국민 앞에서 '여야 협치'를 공감하면서도 서로 ‘네 탓”하기에 바쁜 정치권의 구태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이 이를 서로 인정하고 상호 신뢰를 토대로 향후 수습책을 논의하지 않는 한 아무런 대안이 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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