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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다가 갈 것인가

    2017년 06월 20일(화) 제23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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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태근 대전문학관장
    [투데이포럼]

    호국 영령 앞에서 숙연해지는 6월이다. 값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1833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노벨은 33세 때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노벨은 신문 기사를 보다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는 기사 내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노벨의 형을 노벨로 착각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다. 오늘이라도 내가 죽는다면 이 기사는 사실이 되고,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평가할 것이 아닌가. 노벨은 착잡한 심정으로 숙고한 끝에, 다이너마이트로 모은 전 재산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을 기리고 지원하는 노벨상을 제정했다.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쯤은 죽음에 관해 생각해 봤을 것이다. 죽음에는 예외가 없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오늘은 내 차례요, 내일은 네 차례다. 나도 어제 너와 같았으니, 너도 내일 나와 같으리라. 이것이 죽음의 실상이다. 하늘에서 죽을 날에 호명을 하면 지체 없이 대답하고 귀천해야 한다. 대리대답도 통하지 않는다.

    죽음에는 선후배도 없다. 평균 수명을 대입하여 몇 십 년 후에나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유를 갖는 것도 착각이다. 죽음에는 백 살 먹은 할아버지보다 세 살 먹은 손자가 얼마든지 선배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만은 그 법칙에서 예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 때가 많다.

    묘비명을 보면 죽음의 실상과 그 사람의 생전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몇 사람의 묘비명을 보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버나드 쇼)’,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헤밍웨이)’, ‘살고 쓰고 사랑했다(스땅달)’, ‘괜히 왔다 가네(걸레 스님 중광)’, ‘이런! 그 사람 조금 전까지도 여기 있었는데…!(미국 코메디언 조지 칼린)’,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에 다녀갔을 뿐이다(라즈니쉬)’ 이 외에도 회자되는 묘비명이 많은데, 그 가운데 인상 깊었던 묘비명을 하나 더 소개한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이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으며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본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성공회 어느 주교의 묘비명)”

    왜 사는가? 역설 같지만, 잘 죽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당신은 어떤 삶을 살다가 간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