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전에서 창립된 '호서문학회'가 국내 현존하는 최장수 문학단체로 그 역사성이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것은 문학사적인 의미가 작지 않다. 6·25전쟁 전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지역에서 문학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진귀한 문학 활동 자료 또한 그대로 방치할 일이 아니다. 지역문학의 가치가 고스란히 투영된 자료를 모아 보다 더 큰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승화시켜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호서문학회 발족 연대는 당초 1951년으로 굳혀져 있었으나, 1949년 호서학보에 호서문학회 광고가 실린 것이 최근 발견돼 활동 시점이 그 이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창립총회 이전부터 호서문학회라는 이름으로 문학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초 알려진 것보다 적어도 2년은 앞선다는 결론이다.

정훈 시인은 일찍이 대전에서 문학단체의 산파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1946년 박용래, 박희선 등과 더불어 '동백'이란 동인지를 통해 지역 첫 문학모임을 만들었다. 그 뒤 정훈 시인은 '호서문학'을 한성기, 박용래 등과 함께 만들었고 '차령' '청자' '머들령' '가람문학' 등의 후견인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호서문학이 최장수 문학단체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대전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인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대전문학관이 어제 대전문학의 가치 발굴에 나서기로 뜻을 모은 것은 주시할 대목이다. 근대문화재 신청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대전문학의 흐름과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훈 시인의 일기장과 습작 노트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전망을 밝게 해준다. 지역 문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사업도 이뤄져야 마땅하다.

이제 호서문학, 더 나아가서는 대전문학의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정립하고 미래지향적인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하겠다. 적지 않은 세월, 해방 이후의 혼란기와 전쟁의 폐허 더미 속에서도 지역문단을 꿋꿋하게 지켜온 문인들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그 방향성은 보다 더 분명해진다. 중앙문단의 물량적인 공세가 심해져도 지역문단의 독립적인 위상 또한 잃지 않았다는 점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들의 숭고한 의지를 스스로 보전 계승하는 일은 바로 이 시대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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