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개봉 애니메이션 '소나기'의 안재훈 감독

▲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안재훈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7.8.14
▲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안재훈 감독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7.8.14
▲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안재훈 감독이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7.8.14
▲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안재훈 감독이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17.8.14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 [연필로 명상하기 제공]
"연필로 정성 들여 한장한장 그린 그림은 특별한 감동을 주죠"

8월 31일 개봉 애니메이션 '소나기'의 안재훈 감독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옛날 전화기, 물레, 손잡이가 반질반질한 옛 다리미, 몽당연필이 빼곡히 차 있는 유리병, 그리고 벽에 붙여놓은 각종 글귀.

서울 중구 남산동의 한 골목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연필로 명상하기' 내 안재훈(48) 감독의 작업실 풍경이다.

그동안 안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의 소품이 작업실 곳곳에 남아있어 마치 작은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요즘 젊은 스태프는 옛 물건에 대한 촉감을 잘 몰라서 작업이 끝난 소품들을 일부러 책상 위에 놔뒀어요. 나중에 다른 작품을 할 때 만져보라고요. 그림을 그리려면 형태뿐만 아니라 촉감도 중요하거든요."


오는 31일 안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소나기' 개봉을 앞두고 얼마 전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소나기'는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짧지만 순수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그렸다.

2014년 극장에서 개봉한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에 이어 안 감독이 두 번째로 선보이는 한국단편문학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다.

안 감독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함께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세대 간 고리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인 황동규 시인을 1년에 걸쳐 설득했다. 편지를 보내고, 그간 작품들을 보여주며 황 시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안 감독은 "'소나기'의 밑그림을 보여드렸을 때 마침내 저희를 믿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허락해주셨다"고 전했다.

안 감독은 모든 작품을 연필로 그린다. 최근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 3D를 지향하고 있지만, 2D를 고수하고 있다.

"한장 한장 정성 들여 손으로 그린 그림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3D와는 또 다른 감성과 감동을 줄 수 있죠. 형광등은 밝고, 스위치만 켜면 편하게 쓸 수 있지만, 때로는 촛불이 사람들에게 더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소나기'의 원화는 약 3만장. 2004년부터 2년간 약 200∼300명의 손길을 거쳐 완성됐다.

그런 정성을 쏟은 만큼 '소나기'는 매 장면이 한편의 수채화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꽃씨나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눈밭 같은 흰 갈대밭, 반들반들한 냇물 속 조약돌,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 등 아름다운 풍광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배경이 아름답기에 책 보따리를 둘러메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더벅머리 소년과 서울서 내려온 분홍 옷을 입은 소녀의 가슴 아픈 사랑은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안 감독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는 동안은 하나의 멋진 영화로 여기고 행복을 느끼되, 극장 문을 나설 때는 각자 머릿속에 있는 원작의 감동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제작비는 약 3억원. 손익분기점은 약 15만명 정도다. 안 감독은 "목표가 다소 소박한 편"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그 목표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안 감독은 잘 알고 있다. 그가 기획부터 11년이 걸려 2011년 6월 내놓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트랜스포머3'에 밀려 일주일도 안 돼 간판을 내려야 했다. 관객수는 5만3천명에 그쳤다. 그래도 명작은 알아보는 법.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관객들의 요청에 힘입어 시민단체, 학교 등 공동체에서 계속 상영됐다.

"그때가 국내 극장가의 스크린 독과점, 편법 개봉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던 해인 것 같아요. 그런 일을 겪고 난 뒤부터 제 삶의 태도 역시 많이 바뀌었죠. 그전까지만 해도 앉아서 그림만 그릴 줄 알았는데, 단순히 내 일만 잘해서는 사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내 일도 잘하면서 사회를 바꾸려 애쓰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중한 날의 꿈' 개봉 때는 3천 명에게 그림을 선사했다. 올해는 아예 스태프와 함께 '연필심(心) 관객애(愛)'라는 캐리커쳐단을 꾸려 관객들에게 보답하기로 했다.

안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장래는 밝다고 강조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해외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 관객들은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접하게 됐죠.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익숙함이 주는 이점이 있는데, 그런 것을 많이 놓치게 됐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제는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역사를 만들어갈 일만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적이죠. 한국 애니메이션이 자꾸 만들어져 10년, 20년이 지나면 우리 관객들도 우리 작품을 편하게 접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 감독은 '소나기' 이후 이상의 '날개',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도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창작물로는 인간과 도깨비가 함께 어우러지며 각각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천 년의 동행:살아오름'을 선보일 예정이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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