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청주시 성안동 주민센터
[투데이포럼]

나는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기운을 지닌 사람들과 같이 웃으며 일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잠을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거나 부상 없이 즐겁게 운동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누워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우리는 늘 행복해지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데,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과 그로 인해 느끼고 있는 심정을 돌이켜보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보다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일평생 우리가 늘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존재해왔다. 역사적으로 행복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관점, 다른 하나는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행복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헤르도토스는 인간의 인생은 예측 불가하기에 행복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행복이란 '세상이 본래 가능한 모든 것 중 최악의 형태'이며 그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삶의 모습은 '지옥의 한 형태'라고 결론짓는다.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굉장히 오래됐다. 옛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행복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며, 행복은 모든 욕망의 최상위에 해당되고,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넘어서는 보다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지혜를 선택할 때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해결 불가능한 질문이라고 보고,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삶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보았기에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변적인 고민이 아니라 자아분석 및 행복을 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나는 위 두 가지 관점 중 특정 관점이 옳고 그르다고는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짜증, 화, 진한 술 냄새 등을 품고 내뿜는 악성 민원인이 오면 불행해진다. 내게 웃으며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 민원인이 오면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과 불행은 빛과 어둠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동시에 나오지 않고 교차해서 나오기에, 우리가 행복감을 느낄 땐 불행함을 보지 못하고, 불행함을 느낄 땐 행복감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에도 지구의 자전 및 공전 주기처럼, 행복-불행에 대한 규칙적인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도 불행도 결국 인생에 속하는 것이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떠올리며, 오늘 웃을 수 있는 것과 내일 화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도, 불행도 다 껴안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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