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충북도교육정보원 교사
[투데이춘추]

최영미 시인의 호텔 방 사용 요청 사실이 한동안 논란거리가 됐다. 처음에는 언론도 네티즌들도 '갑질'이라는 비난을 쏟았지만, 시인이 해명과 사과를 하면서 대부분의 오해가 풀렸다. 뿐만 아니라 이런 논란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생계 문제가 재조명됐고, 어느 유명 호텔 체인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투숙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이번 논란은 꽤 의미 있게 마무리된 듯하다. 사실상 예술가의 가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방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집을 통째로 달라고 외친 시인도 있었다.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들려다오 세계가 끝날 때까지…(중략)… 천상의 하나님은 미소로 들을 게다. 그러니 거인처럼 부르짖는다. 집은 보물이다. 전 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 천상병의 ‘내 집’에서다. 세상인심이 각박한지 모르고 너무 순진하게 다 털어 놓은 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세에 쫓기고 이사 갈 걱정에 한숨 쉬던 작가가 잠시 상상에 빠졌을 뿐이다. 그 상상에 자본주의적 색채가 조금 묻어났다 해도 '천상의 하나님'은 미소로 들으셨을 것이다.

문득 십 여 년 전 가르쳤던 한 제자가 생각난다. 학교에서 신문반 활동을 하며, 글도 꽤 잘 쓰고 생각도 깊던 아이, 단칸방에 여러 식구가 함께 살아서 혼자 방을 쓰고 싶다던 아이였다. 고3 졸업을 앞두고 그 아이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아이가 간절히 원한 것은 단 일주일의 조용한 빈 방 한 칸. 결국 유난히 엄하시던 담임 선생님도 마음이 녹아서 빈 방이 있는 시골 할머니 댁에 '무위도식'하러 간다는 아이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해 주셨다.

생각에 잠길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이 아찔한 가난! 옛 선비들은 그 씁쓸함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조선 후기의 명문장가 이용휴는 책상만 놓아도 꽉 차버리는 작은 집에 사는 벗을 이렇게 격려했다. "구도(求道)란 생각을 바꾸는 데 달린 법, 생각이 바뀌면 그 뒤를 따르지 않을 것이 없지. 자네가 내 말을 믿는다면 자네를 위해 창문을 밀쳐줌세. 웃는 사이에 벌써 밝고 드넓은 공간으로 올라갈 걸세."

요즘 범죄화 된 학교폭력 문제로 떠들썩하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의 여유와 인간애를 키워갈 시·공간이 충분했더라도 그렇듯 참혹한 일이 흔했을까? 하다못해 답답한 교실에 갇힌 마음을 밝고 드넓은 공간으로 올려주는 선생님들이 많았더라도 그런 일들이 생겼을까?

풍부한 감수성과 창조적 상상력은 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도 호텔방처럼 아름답고 편안한 일상 공간이 필요하고, 생각에 잠길 시간, 공감하며 소통할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를 편안하고 아름답게 지어주고, 생각의 창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폭력에 물든 마음 자리에 저 청명한 가을빛이 가득하도록.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