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그랜트 유니세프 3대 총재 이야기 다룬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출간

▲ 짐 그랜트 유니세프 3대 총재[출처 유니세프 홈페이지]
▲ 짐 그랜트 유니세프 3대 총재[출처 유니세프 홈페이지]
어린이 생존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잡았던 구호전문가

짐 그랜트 유니세프 3대 총재 이야기 다룬 '휴머니스트 오블리주'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1980년 시작돼 1992년까지 계속된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7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많은 아이가 내전에서 희생됐지만, 당시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총재였던 짐 그랜트는 총탄에 죽는 아이들보다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어 죽는 아이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데 주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휴전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정신 나간 소리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반군과 대통령을 설득한 끝에 결국 휴전을 끌어냈다.

내전이 한창이던 1985년 2월3일과 3월3일, 4월21일 세 차례에 걸쳐 '고요한 평화의 날'이 이어졌다. 이날을 이용해 25만 명의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홍역,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예방접종이 이뤄졌다. 1992년 내전이 끝날 때까지 엘살바도르에서는 '고요한 평화의 날'이 매년 반복됐고 그 결과 많은 아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신간 '휴머니스트 오블리주'(부키)는 3대 유니세프 총재였던 짐 그랜트(1922∼1995)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980년 취임해 15년간 일한 그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는 아동사망률을 낮추는 '아동생존혁명'이다. 초기에는 소금과 설탕을 일정 비율로 섞어 물에 타서 먹도록 해 설사병을 잡는 '경구 재수화염' 보급 사업을 펼쳤고 이어 예방접종 확대로 관심을 돌렸다. 책에 따르면 '아동생존혁명'으로 1980년 16∼17%였던 예방접종률이 1991년 6가지 질병을 기준으로 80%를 넘었다.

그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았다. 독재자의 정책을 합법화해줄 수 있다는 비판에도 그는 "아이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악마와도 손잡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에티오피아와 아이티 등에서 독재자들을 '구애하듯' 대하며 친해진 뒤 구호물자 전달이나 경구 재수화염 보급 등을 할 수 있었다.

1990년 71개국 국가수반과 88명의 정부 대표를 모아 '어린이를 위한 세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도 그의 대표적 업적 중 하나다.

'성과 지향적'이었던 그를 향한 비판도 많다. 어린이 생존에만 집중하기 위해 다른 주요한 문제들은 무시해도 좋다는 태도를 보여 반감을 샀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관료적이고 합의도출 지향적인 유엔의 문화와 충돌했다. 재정 관리 문제와 인사 관련 문제 등을 놓고도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랐고 예방접종 사업에 대해서는 단기 목표에 집중하느라 장기적인 지속성을 해쳤다는 외부 보고서도 있다.

유니세프 미국 기금에서 일하며 그랜트를 알게 돼 이 책을 쓴 애덤 파이필드는 "유니세프의 사명은 짐 그랜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것이었다"면서도 "그러나 그(그랜트)가 없었다면 어느 것 하나 가능했을까"를 되묻는다. 김희정 옮김. 504쪽. 1만8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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