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 사진=박문규
#. 당나귀가 개와 함께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주인이 잠들자 당나귀는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몹시 배가 고픈 개가 당나귀에게 바구니에 든 먹을 것을 꺼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당나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풀을 뜯어먹기에 바빴다. 한참 뒤 주인이 깰 때까지 기다리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늑대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와 개와 당나귀 쪽으로 다가왔다. 당나귀는 개에게 긴급히 도움을 청했다. 개는 꼼작도 않은 채 비아냥거리듯 기다리라 말했다. 이 말을 하는 사이 당나귀는 늑대에게 희생되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 도우며 살자는 것이다. -라 퐁텐 '우화시' 중 '당나귀와 개'

#. 개들이 동물들을 잘 감시하는 탓에 늑대는 습격이 어려워 피골이 상접하게 되었다. 늑대가 길을 잃은 개를 만났는데 기름지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지고 있었다. 덩치가 만만치 않아 함부로 덤벼들 수도 없었는데 칭찬을 해주자 개는 늑대에게 숲을 일단 떠나라고 충고했다. 뭘 좀 먹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침입자나 거지를 쫓아내고 주인을 잘 따르면 뼈다귀를 얻어먹을 수 있다고 했다. 순간 행복해진 늑대는 개 목 주변에 털이 빠진 것을 보고 그게 뭐냐고 물었다. 주저하던 개는 묶여있는 목걸이 때문에 생긴 자국이라고 실토했다. 묶여 있는 개가 얻는 댓가보다는 자유가 그리웠던 늑대는 멀리 도망쳐 버렸다. -라 퐁텐 '우화시' 중 '늑대와 개'

#. 고대 그리스 이솝 이후 군소장르에 머물렀던 우화를 새롭게 꽃피운 라 퐁텐 (1621∼1695)의 '우화시'에서는 온갖 동물이 등장한다. 어린이를 위한 교훈이 목적인듯 해도 거기에는 성인세계 삶과 인간성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혜안과 철학이 스며있다. 개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등장빈도가 극히 적지만 충직하고 귀염 받는 반려동물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예속된 삶을 사는 현실 속의 집단을 반영한다. 무술년을 맞아 라 퐁텐 우화에 등장하는 개의 모습에서 우리 삶의 여러 처세를 성찰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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