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비로 바꿔… 공용물건 손상죄
법원,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

▲ 사진은 재판을 마치고 나온 오쿠 시게하루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일제 강점기 한국인 강제노역과 위안부 문제를 사죄한 내용이 담긴 국립 망향의 동산 내의 ‘사죄비’를 ‘위령비’로 무단 교체한 일본인에게 법원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3단독 김상훈 판사는 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일본인 오쿠 시게하루(69·사진) 씨에 대해 이 같이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일본 자위대원 출신으로 알려진 오쿠 씨는 지난해 3월 20일 오후 9시경 국립 망향의 동산 무연고 묘역에 있던 ‘사죄비’에 ‘위령비’라고 쓰인 석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비석을 훼손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사죄비’는 태평양 전쟁에서 조선인을 강제노역시키고 위안부 동원 임무를 맡았던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 씨가 1983년 참회의 뜻으로 세운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오쿠 씨는 변호인을 통해 “사죄비를 위령비로 변경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사죄비에 대한 소유권이 최초 설치자의 아들인 A 씨에게 있고 소유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죄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한국 형법에서 말하는 공용물건 손상죄는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손상 또는 훼손하면 성립하는 것으로 물건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며 오쿠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또 “사죄비의 설립비용은 요시다 세이지 씨가 출연한 것으로 보이나 그 소유권이 지금 누구에게 있는지는 이 사건 기록상으로는 명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이어 “범행 전 3차례에 걸쳐 범행장소를 답사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며 “죄질이 매우 불량하나 피고인이 고령이고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음을 망향의 동산 측에 알렸고 수사를 받기 위해 자진해서 입국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현재 오쿠 씨는 출국이 금지된 상태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오쿠 씨는 항소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비에 적혀 있는 내용이 거짓말인 점은 확실하다. 판결문을 보고 항소할 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천안=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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