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학 이끄는 작가 아라이 대표작 번역 출간돼

▲ 2016년 6월 경상북도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열린 '제10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아라이.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6.8
▲ 2016년 6월 경상북도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열린 '제10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석한 아라이.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6.6.8
순수의 세계는 어떻게 파괴되나…소설 '공산'

중국 문학 이끄는 작가 아라이 대표작 번역 출간돼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티베트 출신으로 현재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아라이(阿來·59)의 대표작 '공산(空山) 1·2·3'(예담)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작가는 1959년 중국 쓰촨 성 서북부의 장족 자치구 마얼캉 현에서 태어나 1982년 시를 쓰기 시작해 1980년대 후반에 소설로 전향했다. 1989년 소설집 '지난날의 혈흔'으로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문학상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 2000년 장편소설 '색에 물들다'로 중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마오둔 문학상을 최연소로 받았다. 2007년 저명한 중국 평론가 열 명이 꼽은 '실력파 중국 작가' 순위에서 노벨문학상 작가인 모옌을 뒤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티베트 출신인 그는 "문학의 빛이 한 번도 비춘 적이 없는 공간"인 티베트에 관해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작가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산'은 이런 의지가 잘 발현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중국 공산주의와 신(新)사회 문명이 티베트 산골 마을에 들어오면서 꽃잎처럼 겹겹이 포개진 신령스러운 산들이 점점 황폐한 공간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자연이 파괴되면서 그 안에서 살던 인간들의 영혼도 함께 파괴된다.

한국어판으로는 3권으로 묶였지만, 소설의 원래 구성은 6편으로 이뤄져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6편의 이야기가 연작소설 형태로 이어진다. '지촌' 마을이라는 배경은 같지만, 중심인물이 각각 다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을에서 가장 약자인 모자 '상단'과 '거라'가 등장한다. 마을 외부에서 들어온 여인인 요염하고 백치미가 흐르는 '상단'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 '거라'를 낳는다. 늘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마당에 앉아 머리만 빗고 있는 상단은 마을의 노동 조직인 생산대에 나가지 않아 식량 배급을 거의 받지 못한다. 모자는 마을 이집 저집에서 음식을 얻어먹으며 연명한다. 사람들은 이 모자를 대놓고 무시하며 거라에게는 "사생아 새끼"라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거라가 네 살 무렵일 때 라마교 환속 승려인 '인보'가 허약한 아들 '토끼'를 낳는다. 토끼는 자라면서 거라를 친형처럼 따른다. 마을은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는데, 외부로 통하는 큰길에서 마을까지 도로가 뚫리며 산들은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되고 자동차가 들어온다. 처음 보는 자동차에 흥분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는데, 토끼가 그 파편에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마을에서 힘있는 이들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모든 죄를 당시 현장에 없던 거라에게 덮어씌운다. 거라는 친동생처럼 여긴 토끼를 죽인 사람으로 자신이 지목되자 울분을 토하며 토끼네 가족에게 사실이 아니라고 목이 쉬도록 외친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신령의 숲으로 여겨진 천 년 수령의 자작나무가 벌목돼 마오 주석을 위한 만세궁을 짓는 데 바쳐지고, 사람들은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노동에 동원되며 더 힘든 삶으로 내몰린다. 마을에는 당과 연결된 새로운 계급의 서열이 생기고 사람들 사이에 인정은 사라진다.

"수령 천 년이 넘은 큰 나무는 한번 땅에 드러누우면 다시는 광야에 서서 비바람을 부릴 수 없게 됐다." (146쪽)

"도로가 개통됐지만 지촌 사람들은 여전히 두 다리로 걸어 다녔다. 게다가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강제 노역까지 부담하게 됐다. 사람들의 어깨가 닳고 살갗이 벗겨져 피가 흐르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피부와 살은 다시 자라면 그만이다. 하지만 발에 신는 소가죽 장화는 극단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상황에서 평소보다 몇 배나 소비됐고, 이런 손실을 보상해줄 사람이 없었다." (148쪽)

신비로운 공간에 처절한 현실이 뒤얽힌 이야기와 시적인 아름다운 문장들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김태성 옮김. 488/556/572쪽. 각 권 1만6천 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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