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유럽 순방 중 '일본판 쉰들러'로 불리는 자국 인사의 기념관을 찾아서는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모순되는 행동을 보였다.

유럽 6개국을 순방 중인 아베 총리는 14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를 찾아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 전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총영사의 기념관을 방문했다.

스기하라 전 총영사는 2차 대전 중 일본 정부의 훈령을 무시하고 6천명의 폴란드 출신 유태인들에게 일본 비자를 발급해 탈출시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베 총리는 기념관 방문 후 기자들에게 "세계에서 스기하라 씨의 용기 있고 인도적인 행동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제국주의 일본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죄 편지 발송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망언을 쏟아내면서도 제국주의 나치 독일의 만행을 기억하는 기념관을 찾는 이중적인 행보를 펼친 것이다.

'세계의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아베 총리에게 스기하라 전 총영사의 업적을 거울로 자국의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은 없었다.

아베 총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을 방문한 이번 유럽 순방에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며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분주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그는 전날 사울리우스 스크베르넬리스 리투아니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빌뉴스(리투아니아의 수도)도 사정권에 들어오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유럽 전체에 있어서 위협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작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일본을 방문 중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베아트리스 핀 사무총장과의 만남을 회피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NHK에 따르면 핀 사무총장측은 총리 관저(총리실)에 아베 총리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일정 조정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베 총리가 유럽 순방을 마치고 17일 귀국하고, 핀 사무국장이 18일까지 일본에 머물 계획이라 시간상으로는 면담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거절을 한 것이다.

여기에는 ICAN이 일본이 참가하지 않고 있는 '유엔(UN) 핵무기금지조약'이 채택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단체라서 핀 사무국장이 아베 총리가 만나기에 껄끄러운 인사라는 사실이 배경에 있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이라고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강조하면서 정작 핵무기의 전면 폐기와 개발 금지를 목표로 하는 이 조약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핵보유국의 이해를 얻지 못한 조약은 실효성이 낮다"는 게 불참의 이유인데, 이에 대해 ICAN과 같이 반핵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내 피폭자 단체들의 비판이 거세다.

핀 사무국장은 "(조약 찬반국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총리와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대하게 됐다"고 말했고,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의 미마키 도시유키(箕牧智之) 이사장은 이에 대해 "유감이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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