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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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 무덤을 말한다. 우리글처럼 보이지만 한자어다. '山所'다. '뫼 산(山)'와 '자리 소(所)'가 합해져 '묏자리'라는 뜻이다. 엄격히 따지면 산이 아닌 들판 등 평지 무덤은 '산소'가 아니다.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에서 우리만 쓰는 글자다. 일본은 묘(墓), 중국은 분묘(墳墓)라 한다. 왜 우리 선조들은 죽은 사람이 묻힌 곳을 '산소'라 이름 붙였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묘지를 호화롭게 단장하고, 최고 3년 상(喪)을 나는 등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다. 장례 기간과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는다. 죽은 자를 산 자처럼 대한다. 요즘 3년 상을 치르는 사람은 없다. 3일 장을 치르거나, 고작해야 49재(齋)를 끝으로 죽음을 인정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지우는 전환점이 혼(魂)과 영원히 이별할 때다. 이때부터 죽음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다.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죽음은 곧 사체다. 사체를 집 주변에 매장할 수 없다. 사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고 인적이 드문 산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사체)가 산에 매장되어 있다고 해서 '산소'가 됐다.

여기서 우리의 이중적이고 불합리한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이율배반이다. 산소를 쓰는 것은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조상의 매장지를 자주 찾아볼 수 있게끔 집 주변에 매장지를 정할 법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묘지를 쓴다. 특히 무덤이 모여 있는 공동묘지는 집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다.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 가급적 접근하지 않는다. 묘지는 납량특선용 괴기영화의 촬영이나 담력 훈련 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나라들의 경우 묘지가 도심 가운데도, 도로변에도, 마을 중간에도, 집안에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완전 딴 판이다. 여하튼 우리들은 무척이나 조상을 위한다지만 무덤만큼은 생각이 다르다. 매장이 된 이후 죽음과 무덤은 불길(不吉) 그 자체였다. 묘는 철저하게 시각, 공간적으로 격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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