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정관성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도 지난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왔다. 그 만큼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정성을 다하는 제사문화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뿌리 깊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지난 주말까지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의 관객이 1400만명을 돌파하고 한국영화의 역대 박스오피스 2위를 가뿐히 차지했다. 이 영화는 모든 인간은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모두 통과한 자만이 환생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사후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생전에 저지른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악행에 대한 재판을 49일 동안 진행한다. 얼핏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살아있을 때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패륜과 부도덕과 불신, 유린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시기에 영화 속의 재판 과정은 그래서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지 모른다. 단순하면서 식상할 수 있는 ‘착하게 살자’의 메시지다. 흥행관객 수를 통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공감한 것일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자홍처럼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급식마저 끊기는 방학이 오면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지난해만도 100명 중 4명이었다. 고독에 몸부림치다 홀로 숨지는 어르신들이 2012년 175명에서 2016년 392명으로 5년 새 2.2배 가까이 증가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차별과 인권침해로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린 장애인이 2016년 1492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만 1340명이 일정한 거처 없이 추운 겨울을 나야하고 사회적 시선 때문에 제 아이를 품지 못하고 입양을 고민해야 하는 미혼모와 미혼부가 2016년 통계청 기준으로 3만 3000명이다.

게다가 가정불화로 집을 뛰쳐나와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2015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연간 2만여 명이며, 가출 경험률은 이보다 훨씬 높아 실제 가출 청소년 수는 약 27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2018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사상 최초로 60조원을 넘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목숨까지 던지며 남을 도왔던 영화 속 의인(義人)처럼 하지 않아도 선행의 기회는 소외된 우리 이웃들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채근담에는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鉅木斷 水滴石穿)’이란 구절이 있다. 노끈으로 톱질을 해도 나무가 잘려지고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을 수 있으니 아무리 작은 힘도 꾸준히 쌓이면 큰 힘이 되고 작은 성과도 쌓이고 쌓이면 큰 업적이 된다는 의미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번의 생을 살면서 완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번뿐인 삶을 영위하는 동안 남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 지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배려하는 것부터 선행을 시작해보자. 2018년은 ‘선(善)과 함께’ 살아가는 자가 복을 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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