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 행정수도의 헌법상 명문화 작업이 암초에 부딪혔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자문특위)가 어제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한 개헌 자문안 초안에 '행정수도는 세종시로 한다'는 '명문화 규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며 '법률 위임 사항'으로 그 격을 낮추었다. 오는 21일 대통령 개헌 발의안에 그대로 반영될 경우 '세종시=행정수도 완성'이라는 당초 목표는 또 다시 표류하게 돼 있다. 하책(下策) 중에서도 가장 낮은 하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정치권에서 행정수도의 헌법 명문화를 약속해왔고, 그 결과 충청 지역민의 기대감을 한껏 올려놓은 후 이제 와서 이를 뒤집으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고약하다. 세종시를 정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그 본질이 왜곡되면서 충청권 주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트라우마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2004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 특별법 제정 논란, 세종시 수정안 파동 등이 남긴 생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 사안은 수도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거기에 적합한 기관의 범위를 결정하므로 그만큼 막중하다.

당초 헌법 명문화 방안이 나온 것은 바로 이런 위헌 논란, 국론 분열 등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법적 안정성'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이슈이자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상징성도 있다. 당초 행정수도 위헌 결정의 이유로 제시됐던 '관습 헌법상 서울이 수도'라는 법리를 피하려면 헌법에 '위임 법률'의 근거만 마련하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초안 마련 과정에서 편의주의적으로 대처한 결과 졸속에 그쳤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여러 여론조사와 토론 결과에서 '세종시 행정수도 명문화'가 우세했음에도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가 여론 왜곡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헌법의 영토 조항인 3조와 통일 조항인 4조 사이에 세종시 행정수도 명문화 조항을 선설하기로 이미 당론을 확정한 바 있다.

물론 자문특위 초안은 대통령 자문에 응하는 보고서 성격이어서 문 대통령의 최종 의지가 결정적이다. 행정수도 완성은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안 결정과정에서 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한번 기대하고자 한다. 특히 주시할 건 자유한국당의 태도다. 정치권의 명백한 입장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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