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홍 청주시 경제투자실장

[클릭 이사람]
부친 사업영향 안정적 직업관, 
1985년 7급 공직생활 시작해
사상최초 수식어 늘 따라다녀, 통합청주 최초 3급 부이사관
함께 일하고싶은 관리자 1위

▲ 반재홍 경제투자실장
1977년 청주고에 입학한 소년 반재홍. 그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지학(志學)의 나이에 일찌감치 공무원을 장래 희망으로 삼은 이유는 명확했다. 늘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사업가로 활동하는 아버지의 ‘롤러코스트 인생’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젖먹이 시절 제재소를 운영하다 폐업하고 초등생 이후 청주 중앙극장을 경영하는 등 경제적 안정감보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통령, 국회의원, 검사, 의사, 변호사 등 원대한 꿈을 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인생의 쓴맛을 간접경험한 그는 무엇보다 직업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무원이 최고라 생각했다. 당시 나라의 녹을 먹겠다는 그의 주장에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삶을 살아온 장본인인 아버지도 환영했다. 일찌감치 철이 든 그는 충북대 행정학과 시절 행정고시를 도전했지만 헛된 꿈에 청춘을 허송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7급 공채를 치렀다. 통합청주시 최초로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퇴임을 앞둔 반재홍 경제투자실장의 공직살이의 시작이다.

1985년 문화·북1·남2가동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행정 6급 승진 전까지 밤낮으로 쉬지않고 일에 파묻혀 살았다. 이 시절 인생의 쓴맛을 보면서도 그는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배울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다. 배움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청주시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공무원이었다. 1989년 10월 청주시 최초로 일본 자매도시인 돗토리시(鳥取市) 파견연수를 다녀왔고 1999년 5월 제1회 청주항공엑스포의 국무총리 초청을 위해 국무총리실에서 브리핑을 진행했다. 1999년 10월에는 청주종합무역센터를 최초로 개설해 민간무역을 지원했으며 제1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는 시 단위 최초로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의 참석을 이끌었다. 2008년 기획예산과장 당시에는 청주시 유사이래 최초로 1조원의 예산을 돌파시켰다. 특히 2010년 7월 충북도청 식품안전과장으로 근무 땐 2013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 최초 기획입안 및 국제행사 제1호 승인을 위해 남모를 공도 세웠다.

하지만 청주시 ‘기획전략통’으로 불린 반 실장의 쉼없는 광폭 행보는 조직내 시기·질투를 불러왔다. 그는 시장이 교체 때마다 ‘전임시장의 최측근’이라는 주변 입김으로 인해 인사이동 당하기 일쑤였다. 그 때마다 ‘쓴맛을 경험하면 치열하게 도전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업무에 매진했고 부도옹(不倒翁)처럼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장들도 이같은 모습을 지켜보다 결국 그를 다시 주요 보직으로 임용했다. 지난해 6월 청주시 공무원 노조에서 ‘함께 근무하고 싶은 관리자’ 1위에 선정된 것도 마법과도 같은 열정에 기인한다.

3급 부이사관 승진때부터 ‘아름다운 퇴진’을 약속한 반 실장은 이달 말 공직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는 물러날 때를 알고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 후배들을 위할 수 있는 길이기에 이 고난을 오히려 달게 받아 들일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반 실장은 “지난 35년간 청주시 발전을 위해 쉼없이 달려오면서 어떤 후배엔 엄했고 어떤 후배엔 못난 상사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 민선 7기를 맞는 후배들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한걸음 더 뛰어주길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김영복 기자 kyb102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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