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신 충남교육청 학교정책과장

언젠가 대학동문들과 용정을 여행한 적이 있다. 많은 곳을 다니고 추억도 많았지만 나의 심장을 가장 뜨겁게 했던 것은 독립운동가 김약연 선생의 '나의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이 새겨진 낡은 판넬이었다. 뜨거운 여름이었는데도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오늘 내 발자국이 훗날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 모르니 함부로 어지러이 눈길을 걷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고시처럼 내 행동은 나의 자식과 제자와 후배의 삶이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경고였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도 한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아이들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데 부모의 식성을 닮고, 걸음걸이를 닮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닮고, 물자를 대하는 방식을 닮는다. 자식을 자랑거리 삼으려 하지 말고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라는 명언이 서슬 퍼렇게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 부모로 산다는 것은 두렵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좋은 부모의 삶만으로 자녀의 삶이 결정된다면 이것도 일종의 연좌제다.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도 있고, 좋은 부모를 일찍 잃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마약과 범죄가 득실댔던 카우아이 섬의 18년간의 연구는 좋은 환경은 부모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지지하는 어른에 의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아이들은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단 한 명의 어른만 있어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교육청이 강조하는 ‘온 마을이 함께하는 인성교육’ 역시 마을의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 되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한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존엄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성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충남교육청은 올해 경로당 어르신들을 교사로 모시는 마을인성학교, 마을교사가 찾아가는 창의체험학교, 농어민 명예교사와 함께하는 텃밭 가꾸기, 지역단체와 함께하는 인성교육과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온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타인을 존엄하게 대할 줄 아는 바른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된 교육활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어른들이 저마다의 위치와 생업에서 한번쯤 ‘과연 아이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고, 작은 시설 하나 설치할 때도 ‘혹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배려할 것은 없는가?’ 고민해 보고, 때론 엘리베이터에서 시끄럽게 재깔대는 아이들에게 ‘요놈들이 나의 노후를 책임질 소중한 인재구나!’ 칭찬 한방 날려주는 일상이 함께 해야 완성될 수 있다.

올해 우리 과에서 기획하는 활동 중에 ‘마을아빠와 함께하는 숲길 체험’이 있다. 처음에는 ‘아빠와 함께’라고 했다가 아빠가 없는 아이, 아빠가 함께 해줄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으로 탄생한 용어가 ‘마을 아빠’다. 사회적 부모의 역할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강조되고 있다. 교회 오빠도 있고, 동네 오빠도 있으니 마을 여기저기에 마을 아빠, 마을 엄마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을은 아이들의 또 다른 학교고 가정이다. 사랑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솟아나는 것이라니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관심가지고 칭찬하는 소리가 봄바람처럼 온 마을에 살랑대기를 바라며 4월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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