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제 마지막 왕도인 부여에는 1400여년 전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독창성과 진취성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 간헐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고색창연한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군내 공공기관이나 개인 화단에서 관상용으로 쓰이거나 마당 바닥재로 활용되고 있는 초석, 장대석 가운데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때마침 부여군이 군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백제시대 석조물을 정림사지 경내로 이전작업을 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굳이 유적 발굴 작업이 아니더라도 부여군에는 개발사업 과정이나 자연발생적으로 여러 유적이 발견된다. 예전부터 일반 개인이 사용해오던 주춧돌이나 바닥재용 석재 가운데 상당수가 유적일 개연성이 크다. 소정의 절차가 까다로워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백제 도성 유적의 위치 찾기의 과학화 작업을 모색한 것도 그래서였다.

고도보존과 도시개발 측면에서 부딪히는 필연적인 문제다. 기초자료 조사 작업이 불가피하다. 부여군이 2년 전부터 백제시대 석조물 제자리 찾기 운동을 펼친 것은 잘한 일이다. 기증방식으로 공공기관과 개인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다른 용도로 사용해온 유적을 뒤늦게나마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건 백제의 후예로서 자부심도 불러 일으킬만하다.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돌맹이 하나라도 허투루 취급할 수 없다. 기증된 백제 시대 석조물은 방형·원형 초석과 장대석 등 총 30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 관련 건물지 부재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백제문화가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 삼국의 상호교류의 문화적 탁월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도 백제문화가 한낱 패망한 역사로서 기억되고 신라문화권에 비해 뒤쳐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 지자체 그리고 주민들이 해야할 몫이 적지 않다. 문화 유적은 제대로 보존되고 그 가치가 충분하게 고증·계승되어야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갖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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