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릿한 향수 자극, 첫사랑ㆍ원작 영화 추억 소환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모습 [세종문화회관 제공]
영화 미덕 오롯이 살린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아릿한 향수 자극, 첫사랑ㆍ원작 영화 추억 소환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원작 영화의 감성을 오롯이 무대 위에 풀어냈다.

이병헌, 고(故) 이은주 주연 동명 영화(2001)는 시공간과 죽음을 초월한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10여 차례 재상영됐을 만큼 많은 마니아를 낳았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동성애 서사, 현실성이 떨어지는 환생이란 소재를 활용하지만 운명적 사랑이라는 낭만적 이야기와 맑은 서정으로 평단과 관객 양쪽 모두 호평이었다.

뮤지컬로 환생한 이번 작품도 화려하진 않지만, 섬세한 조명과 절제된 감성으로 원작의 미덕을 살려내는 데 성공한다. 2012년 초연과 2013년 재연 이후 팬들의 다시 보고 싶다는 요청으로 5년 만에 재공연이 결정됐다.

뮤지컬은 1983년 '인우'와 그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태희'의 운명적인 사랑, 2000년 교사가 된 인우와 태희의 모습을 간직한 학생 '현빈'의 재회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과거 사랑 이야기를 먼저 펼쳐내고는 17년 후 혼란에 빠진 인우 이야기를 그린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빠른 장면 전환과 무대 분할 등을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노련하게 섞는다.

이 때문에 인우가 겪는 현재의 혼란, 과거의 깊은 사랑이 효과적으로 객석에 전달된다.

넘버(곡) 분위기도 극과 닮았다. 강렬한 고음이나 압도하는 음향 대신 서정적이면서 애잔한 선율이 극을 뒷받침한다.

뮤지컬은 시간 배열 방식과 추가된 음악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의 축약 판에 가깝다. 영화 속 유명 대사나 장면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태희가 인우 우산 속으로 폴짝 뛰어든 장면부터 첫사랑의 설렘에 어쩔 줄 모르며 운동화 끈만 묶어주고 도망가는 인우의 모습, 숟가락과 젓가락의 받침이 왜 다른지 묻는 태희의 질문,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왈츠까지 이 작품은 첫사랑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원작 영화에 대한 추억까지 소환한다.

특히 인우를 연기하는 배우 강필석은 이병헌 못지않은 깊은 감성을 선보인다. 그는 첫사랑에 얼이 빠진 순수한 대학생과 옛 연인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는 국어 교사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작품 중반부 이후부터 객석 이곳저곳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다만 미니멀한 무대는 때로는 서정적이라기보다는 허전한 느낌을 줬고, 당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태희 캐릭터가 영화에 비해 덜 부각된 듯하다.

한편, 한껏 높아진 성(性)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고려한 듯한 연출도 눈에 띄었다. 현빈이 여자친구를 골리기 위해 주는 선물은 속옷에서 뱀으로 바꿨으며, 짓궂은 친구들이 인우에게 스킨십 진도에 훈수를 두는 장면도 술자리 소음으로 능청스레 넘어간다.

공연은 8월 26일까지 이어진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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