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향년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 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를 주도한 후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고, 두 번의 국무총리와 9번의 국회의원을 거친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3김 시대'의 한축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서 '충청지역'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영욕의 굴곡진 족적을 남긴 그였기에 충청 주민들로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김 전 총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대선에서 낙선했지만 그 다음해 총선에서 충청권을 석권하면서 '충청 맹주'로 입지를 굳혔다. 충청권을 기반으로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해 1992년 김영삼 정부를 출범시켰다. 김 대통령과의 갈등 이후 자민련(1995~2006)을 창당했다. 그리고는 1997년 내각제를 고리로 DJP연합을 결성, 김대중 정부를 출범시킨 후 국무총리를 지냈다.

하지만 자민련의 녹색 바람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4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충청권으로부터도 외면 받았다. '노추'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섰다가 정당득표율 2.9%에 그쳐 그의 10선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정계입문 43년만에 불명예스럽게 정계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 자체에 시대적인 비전과 수권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비민주적인 조직 운영에다 세대교체·인물영입이 안되고 충청정당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탓이 크다.

김 전 총리에게는 정치 9단, 영원한 2인자, 처세의 달인, 촌철살인의 능변가,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숱한 어록을 남겼다. 그는 "정치는 허업"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정치는 보다 큰 그림, 진솔한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진다. 구시대적인 병폐를 극복하고 상생의 정치 기반을 마련하는 건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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