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위를 이용해 여비서에게 성폭력 등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 무죄가 선고됐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의 여비서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었다. 충청권 차기 대권주자로 꼽혀온 안 전 지사는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안 전 지사에게 비록 무죄가 내려졌다고는 하지만 부하직원과의 성 스캔들로 인한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하는 운동, 즉 '미투'(Me too) 운동이 전개되는 시점에서 이슈화됐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고위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 폭로 이후 연극계, 영화계 등 각계에서도 성폭력 피해가 드러나면서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었다. 미투 운동과 연루된 여러 사건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1심 판결이어서 특히 주목을 끈다.

안 전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증거 부족'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재판부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며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이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무죄로 판시했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한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업무상 위력'에 대해 법원이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전 지사는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해왔다. 자칫 미투 운동이 동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제기되는 이유다. 요즘 일부 여성계의 남성 혐오 운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안 전 지사는 "죄송하다. 부끄럽다.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정치적인 재기를 하기엔 사안이 너무 무겁고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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