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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아침 꿈에서 깨어

    2018년 10월 11일(목) 제23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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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묵 대전시개발위원회장

    꿈으로 일찍 눈을 떴다. 아직도 그 꿈속의 분위기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홀로 협곡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은 마치 동굴처럼 긴 터널로 보였다. 그 끝은 전혀 알 수 없이 길고 어두웠다. 저 앞에 희끄무레하게 뭔가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웬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의 형색은 거지에 가까웠다. 그는 나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매달렸다. 그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비켜!” 그의 손에는 공기총이 들려 있었다. 그가 겨누고 있는 쪽을 바라보니 꿩 한 마리가 도망친다. 

    나는 꿩을 향해 달렸다. 쫓아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꿩을 쫓아가고 있다. 내가 손으로 꿩을 잡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발목을 낚아챘다. 손에 꿩을 움켜쥔 사내는 나뒹구는 나를 향해 조소를 보내고 있다.

    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나와 깊은 생각에 젖는다. 비록 꿈이라 해도 그 어둠 속에서 굶주림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선처해 주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것도 그렇고 그의 오직 생계수단인 꿩 잡기를 가로채겠다고 앞질러 달려간 내 꼴이 우습기만하다. 여유 있는 사람이 그 걸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짓을 했구나 싶다.

    그런데 내 발목을 낚아채고 꿩을 잡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도 좋은 것인가.

    문득 원로 이어령님의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1세기는 통제 불능의 시대가 될 것’이라던 지적이 생각난다. 모두가 개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다 보니 획일적인 통제언어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진단이다. 

    남에게 배려하는 것보다는 오직 나의 이득을 위해 사는, 이기에 찬 세상이 됐다. 민주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개인주의는 키울 필요가 있다 해도, 지나치면 이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부담이 됨도 인식해야 한다. 

    요즘 현상의 급격한 확산은 통신수단의 발달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두가 함께 하는 세상보다는 나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요즘 세태는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옆의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사는 세상이 우리 곁에 와서 버티고 있다. 사회 발전의 내공을 키우기 위해서 지도자들이 앞선 생각을 가지고 팔을 걷어붙일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커다란 움직임이 필요하다. 내 나라가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침 오늘이 한글날이다. 요즈음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말이 많다. 이 책은 두 종이 있다. 여진 정벌의 공을 기려 세종이 이천에게 하사하여 후손 이한걸의 집안에서 보관해 오다가 간송박물관으로 넘긴 간송본과 2008년 상주에서 나왔다고 하는 상주본인데 상주본은 소유 분쟁으로 아직도 우리 국민들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2015년 3월에 소장자의 집에 불이 나서 그 존재마저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개인의 재산권이니 뭐니 하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 크게 대의를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 훈민정음의 창제정신과 이 책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진즉 국가에 헌납해 보관이 이루어졌어야 했던 일이다.

    한글날 새벽에 꾼 꿈이 왠지 심상치 않다. 요즈음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삶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