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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

    [독자위원 칼럼] 이동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지원장

    2015년 07월 29일(수) 제17면
    충청투데이 cctoda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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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물질적인 부(富)에 이끌려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심한 육체·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죽음과 같은 결정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면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며 이것이 '참살이'인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압축된 산업화와 함께 정신없이 달려왔던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어느 날 이러한 병폐를 인식하고 이제는 육체적 정신적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는 삶에 눈길을 돌렸다.

    웰빙의 출발선이자 도착지는 웰다잉이다. 웰다잉 없는 웰빙은 무의미하며, 웰빙 없는 웰다잉은 실현하기 힘들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인생을 가치 있게 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깊이 사랑하게 하여 삶을 한층 격조 높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또 웰다잉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남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도록 도와 줄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유한성의 불안감, 경쟁심과 소유욕에서 한발 떨어져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행복한 삶을 완성시키기란 쉽지 않다.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한 삶에 대한 마무리가 없다면 웰빙은 영원한 신기루다.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은 고령화에 따른 각종 질병의 증가, 가족해체와 1인 가구의 확산 등 고독의 농도가 짙어져 가는 만큼 선택에서 필수로 이동하고 있다.

    웰빙과 웰다잉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것 같아 보이지만 가족에서부터 공동체문화나 시스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찰은 물론 거시 담론도 동시 작동해야 한다. 오랫동안 효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와 중첩될 경우 가족문화조차 바꾸기란 쉽지 않은 현실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연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준비가 필요하다. 더는 치료가 어려운 환자가 임종 몇 일전에 24시간 훤히 켜진 전등, 각종 의료기기 작동소리, 옆 환자의 비명 등으로 한달 내내 고문과 다름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평생의 웰빙이 마지막 웰다잉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각종 처치로 환자가 고달프게 연명하게 하는 대신 끝까지 삶의 마지막을 가치 있게 누릴 수 있도록 하고 환자는 깊은 위안 속에 평온하고 보다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는 경험을 했던 가족은 “임종실이 어떤 공간보다 좋았다. 가정집 침실과 같은 곳에서 종교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가족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 다하고, 그냥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따뜻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삶의 시작과는 달리 그것을 채우고 가꾸고 매듭짓는 내용과 방법은 자유의지로 개인의 특성에 귀결된다. 시중에는 일반화된 실천계명도 나와 있지만 개개인의 행복이 다 다르듯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설계와 실행은 맞춤형 개별화가 필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사회공동체의 합의와 시스템도 갖추어야 현실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우리도 몇 년의 준비를 거쳐 최근에야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건강보험적용으로 그 시동은 걸었다. 질환 확대, 가정호스피스 도입, 병상 확충 등 웰빙 만큼이나 웰다잉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는 사회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삶은 죽음에 의해 완성 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 웰다잉에 의해 웰빙이 완성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