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후한(後漢)의 세조(世祖)가 된 광무제(光武帝) 밑에는 천하통일 후 소위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들이 수없이 모였다고 한다.

광무제는 자신의 누이이자 미망인이었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전부터 대사공(大司空)의 직에 있는 송홍(宋弘)을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광무제라 해도 송홍에게 정면으로 자기 누이를 아내로 삼아 달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리 병풍 뒤에 누이를 숨겨 놓고 송홍을 불러 낸 광무제는 서서히 말머리를 끄집어냈다.

“어떤가 ‘부(富)하면 친교(親交)를 바꾸고 귀(貴)해지면 처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넌지시 광무의 누이에 대해 의견을 떠보는 것을 알아차린 송홍(宋弘)은 아주 뚜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로서는 빈천(貧賤)할 때의 친교를 잊을 수 없고 조강치처(糟糠之妻)는 당(唐)에서 내리지 않는다(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 )라는 것이 참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의 남편을 가로채고자 하던 공주도 이렇듯 명확하게 말을 하는 데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의 조강(糟糠)은 재강(술을 걸러 내고 남은 찌끼)과 겨다. 아주 보잘 것 없는 식사를 말한다. 가난해서 재강과 겨 같은 것 밖에 먹지 못하고 고생을 같이 해 온 처는 제아무리 복이 터져 부귀를 누리게 되더라도 버리거나 마구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강지처의 가풍은 더욱 굳건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됨을 알고 바른 예절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국전서예초대작가·前대전둔산초 교장 청곡 박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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