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 3초간 브레이크 밟아…유족 "기사 사고 알았을 것" 주장
"버스 우측 사각지대…차량 내부서 바깥소리 듣기 어려워" 반론도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하고도 운행을 계속한 시내버스의 블랙박스가 지워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고가 난 줄 몰랐다는 운전기사 주장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숨진 배모(11)군의 가족은 사고 당시 15m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던 폭음, 버스의 운행기록장치 등을 근거로 운전기사가 사고가 난 것을 몰랐을 리 없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 당시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보면 A(60)씨가 몰던 시내버스가 길 가장자리를 걷던 배군을 들이받고 그대로 지나간 직후 주민 6명이 몰려든다.

사고 지점에서 약 15m 떨어진 곳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B(50·여)씨는 "가게 안에 있다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가 지나가서 교통사고임을 직감했다"면서 "쓰러진 아이에게 달려갔더니 이미 버스는 한참을 지나간 뒤였다"고 전했다.

B씨는 멀어져 가는 버스를 향해 "사고 났어요"라고 소리치며 30m가량 뛰어서 쫓아갔지만, 버스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평온하고 조용한 오후에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고 버스는 우측 앞부분으로 배군을 가격한 뒤 오른쪽 앞바퀴로 치고 지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배군의 아버지(47)는 "사고 당시 버스가 덜컹거리면서 소리가 났을 텐데, 운전기사가 사이드미러로 후방을 살폈다면 사고가 난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가 사고 시점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브레이크를 밟은 정황도 드러났다.

디지털 운행기록장치(DTG) 분석 결과, 사고가 발생한 지난 15일 오후 3시 25분 36초부터 38초까지 3초간 사고 버스의 브레이크가 작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3초간 버스의 속도는 시속 18㎞에서 시속 14㎞로 줄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버스 기사가 돌발 상황을 인지하고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수도 있지만, 단정 짓기는 어렵다"면서 "블랙박스 영상과 운행 기록 장치를 비교하면서 확인하면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의혹과 관련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버스를 운행하면서 이어폰을 끼거나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 주의력이 떨어지지 않았던 상황"이라며 "정말 사고가 난 줄 몰랐다"고 진술했다.

그는 "당시 버스에 승객이 6∼7명이나 타고 있었지만, 이상하다며 얘기해 준 사람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A씨가 받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운전기사 A씨가 사고를 인지했는지 여부를 밝힐 유일한 열쇠이자,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단서인 블랙박스 복원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고가 난 뒤 버스회사로부터 넘겨받은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영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A씨는 "블랙박스를 삭제하는 등 조작한 적이 없다"면서 "기기 오류로 영상이 모두 날아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저장 장치 데이터 복구가 이뤄지는 대로 사고 당시 버스 내부 상황을 면밀히 분석할 예정"이라면서 "A씨의 표정과 승객 반응 등을 확인하면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3시 25분께 배군은 청주 옥산면 도로 가장자리를 걷다 뒤에서 오는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목격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날 오후 4시 20분께 노선을 따라 정상 운행하던 A씨를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logo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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