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투게더]
13 할머니와 남겨진 세명의 손자들 - 1편
13 할머니와 남겨진 세명의 손자들 - 1편
이혼 후 베트남 가 사업 실패
폐렴 투병… 병원비 하루 수백
건강 악화로 ‘귀국’도 물거품
할머니가 할수있는 건 전화뿐
‘8일 6시 10분, 김해공항.’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졌는지 할머니는 모르겠다고 했다.
아들은 반대하던 결혼을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다 몇해를 못넘기고 찢어졌다. 사업에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가끔 전화로 늙은 어미에 몇마디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아들은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가 베트남에 머물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지칭한 이는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알려왔다. 돈을 벌러 낯선 땅까지 밀려난 아들은 그 곳에서 수개월간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했다.
8일, 6시10분. 이날은 그런 아들이 온다고 하는 날이었다. 할머니는 아들이 귀국하면 마중가려고 몇주전부터 달력에 써놨다. 대전에서 아들을 치료하려고 대학병원에 예약도 했다. 아들을 태운 비행기가 공항에 닿으면 병원까지 헬기를 태워줄 수 있는지 119에 물어도 봤다. 할머니는 새해를 갓 넘겨 연락을 받았다. 아들은 오지 못한다고 했다. 아들에게 폐렴이 왔고 결국에는 인공호흡기까지 달았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이 칠십 줄에 진통제 없이 못 사는 할머니가 홀로 돈을 벌러 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은행도 지인도 더는 빌려주지 못한다고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속에서도 가난은 숨겨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 앞에 모정을 논하는 것은 사치였다. 객지에 자식을 홀로 떠나보낼까 두려워하면서도 혹여나 아들의 관을 비행기로 실어올때의 비용까지 걱정해야 하는 것은 가난의 굴레가 만든 거였다. 마치 엄숙한 장례식장 한편에서도 누군가는 상차림 비용을 걱정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 김모 씨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매일이고 대사관에 전화해 아들의 상태를 물어봐달라는 것밖에 없다”며 “아들이 늘 내게 미안하다 했었다. 아들이 죽었나 살았나 노심초사하는 속에서도 병원비는 얼마나 들어가나 돈 걱정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허탈한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12일자 1면에 2편 계속>
홍서윤 기자 classic@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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