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환 문의구룡예술촌장

3월의 날씨가 변덕이다. 엊그제 종일 비가 얌전히 내리더니 비 그친 오늘 오후는 완연한 봄날이다. 추운가 싶더니 봄 햇볕과 바람, 꽃이 봄의 계절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꽃 마중의 날이 온 것이다. 봄이 꼭 ‘복 받고, 상탄 느낌’이다. 봄은 이렇게 우리들의 춘심을 일깨운다.

봄비에 나무 끝 새순이 연녹색으로 비쳐 보인다. 생명의 조화와 계절의 순응이 합주하는 봄이다. 동네의 들길을 걸으며 수목과 풀의 높이와 크기, 모양이 서로 다른 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봄맞이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긴 겨울 회색빛 색감을 뒤로 하고 매화가 하얗게 남촌에서 진군해 온다. 화선지 위에 옅은 분홍의 물감을 진하게 찍으면 화하게 번지듯 그 느낌으로 봄의 꽃 마중을 맞고 싶다.

대청호 호반길을 따라 봄의 느린 발걸음으로 걷는 여정. 호숫가에 핀 벚꽃 길 따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문의 사람들. 반세기 수몰 전 사람들의 안부와 설레는 봄을 만나는 날 오늘이 봄을 깨우는 날이다. 구례의 노란 산수유와 개심사의 겹벚꽃과 청벚꽃이 생각나는 봄날. 봄을 꽃으로 맞고 가엽게 숨는 봄날의 오후가 그립다.

시인 김춘수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므로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하였다. 봄꽃의 첫 시동은 눈 속에서도 고개를 내밀고 존재감을 알리는 복수초다. 꽃과 식물도 봄이 되면 새로운 삶의 시작이듯 인간 또한 같다. 긴 겨울 움츠리고 느슨해진 삶에 희망을 불어넣듯 노란 복수초꽃은 봄의 전령사이다. 산 속의 얼레지와 노루귀가 분홍과 흰 꽃으로 필 때, 우리 주위에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창이다.

그러나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봄기운으로 찾아와 산야의 꽃을 새 생명으로 키운 봄은 빠르게 가버린다. 그렇듯 봄은 덧없고, 하염없고 부지불식간에 가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봄을 즐기며 맞는 꽃 마중이 봄을 배웅하고 여름을 맞는 사이의 행사인 것이다.

꽃 마중 속에서 나는 유년 시절의 봄을 그린다. 밭의 땅이 들뜨는 초봄에 보리밭 밟기가 지나 파릇한 싹이 솟은 봄날의 보리밭이 생각난다. 아지랑이 피는 둑방을 거닐며 노란 꽃다지와 맑은 태양, 종달새가 날던 보리밭은 전형적인 옛 고향의 풍경이었다.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정경이지만, 내 유년에 겪었던 아이 같은 마음의 시적 감상은 문학적 글이 되었다.

봄이 익어가는 이 시절에 45년 전 모두가 젊었던 옛 문의 사람들이 가슴 저리도록 그립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대청호 물밑 동네의 이야기가 생각나고 봄바람 일렁이던 문산리 앞 개울가에서 버들가지를 꺾었던 장소를 이리저리 서성인다. 나만의 봄, 꽃 마중의 행사는 기억을 동반한 몰입(沒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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